어머니, 넷째 아들 재명입니다. 어머니, 기억나세요? 경북 안동 산골짜기 방 안 물그릇조차 얼어 터지는 추운 소개 집 부엌에서 우리 남매들 추울까 봐 새벽마다 군불 때 주시던 그때를…자식들 입에 거미줄 칠까봐 낮에는 남의 밭일로 밤에는 막걸리와 음식을 파는 힘겨운 삶에 지쳐서 부엌 귀퉁이에서 우리들 몰래 눈물 훔치시던 모습을 저는 기억합니다. 행여 들키시면 매운 연기 때문인 척 하셨지만 아무리 둔하고 어려도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.

어머니, 성남으로 이사 와서는 중학교 대신 출근하는 넷째 아들이 가여워서 아침마다 한 손에는 도시락을, 또 한 손에는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공장까지 바래다 주셨지요…낮에는 집안 살림에 공중화장실을 지키는 고된 노동까지 하셨으면서도 어린 아들이 철야 작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새벽까지 봉투를 접으시며 기다려 주시건 그 안타까운 마음을 기억합니다. 제가 힘들어 할 때마다 넷째 아들 잘 키우면 나중에 호강한다고 했다던 그 점쟁이의 말을 되뇌이시면서 묵묵히 저를 믿고 격려해주시던 그 깊은 속정을 지금은 압니다.

제가 일말의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참혹한 환경 속에서도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고 죽을 힘을 다해 한 발짝씩 나아가 마침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 그 따뜻한 격려와 깊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. 어머니, 어머니는 제 생명의 연원이자 제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. 그러나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그 점쟁이의 말대로 제 덕에 호강한 일보다, 저로 인해 겪은 아픔이 더 크신 것만 같습니다. 자식의 도리를 다 하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언제나 부족했습니다. 자식들이 행복하게 우애 있게 살아가는 것도 어머니의 기쁨일 텐데 안타깝게도 벌써 둘이나 먼저 떠나버렸습니다. 어머니를 위한다고 한 일이 어머니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습니다.

많이 늦었지만 남은 자식들이라도 어머니 마음 다치지 않도록 우애 있게 잘 살아보겠습니다. 지독한 가난과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우리 일곱 남매를 길러내신 어머니, 어머니의 그 깊고 깊은 은혜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을 겁니다. 너무나 가까이 계신 분이라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지금껏 감사의 마음 한 번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. 더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이 말씀 드려봅니다.

어머니 사랑합니다.. 감사합니다..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 주세요..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, 어머니…